제목 수요기도회 말씀 공유합니다(7/6) No 4098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68
[ 날짜 :   2022-07-06 오후 1:50:43 ]
2022. 7. 6. 사도행전2:14-1.
교회가 지녀야 할 표징들

1.오순절에 성령님이 사도들과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에게 임했을 때 그들은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신약의 교회가 세워졌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세워진 교회가 지니고 있는 모습에 대하여 말해 준다. 우리는 이 모습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지상의 교회들 가운데 드러나기 원하시는 모습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때 교회의 모습들은 모든 시대 교회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표징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2.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로 말미암아 주께 돌아온 수는 삼천이었다. 그들은 회심한 후 한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이 공동체야말로 주님의 몸 된 교회로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다. 여기 구별된 공동체란 이 공동체 안에는 세상과 구별된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 표징들 가운데 하나는 말씀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 여기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말은 성도들이 말씀에 대한 관심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영적인 교회는 언제나 말씀에 대한 관심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밝혀주는 유일한 은혜의 수단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언제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말씀에 대한 관심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교회가 지녀야 할 표징들 가운데 다른 하나는 성도의 교통이다. 성도의 교통은 사랑의 나눔으로 표현된다. 구약에서는 성도의 교통은 화목제를 드린 후에 가족들과 이웃들이 함께 하는 축제로 표현하였고, 초대교회는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서로 물건을 통용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고 또한 “서로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히10:24,25)”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통이 있는 곳에는 기쁨과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다.

교회가 지녀야 할 표징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기도다.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믿음의 행위다. 이와 같은 사실은 개인이나 한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영성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시금석은 기도의 양과 질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한 공동체가 기도의 능력을 알고 모일 때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쓴다면 분명히 그 공동체는 영적으로 성숙한 공동체일 것이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에 대하여 말할 때마다 “기도에 힘썼다”는 말로서 그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거룩한 공동체로서 교회가 지녀야 할 또 다른 하나의 표징은 능력이다. 물론 이 능력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말한다. 초대교회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사모했으며 또한 그 능력을 행하였다. 초대교회가 구한 기도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행4:30)” 실제로 이와 같은 기도와 더불어 초대교회 가운데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 43절은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말하고 있고 사도행전 3장은 성전 미문에 앉은 “나면서 못 걷게 된 이가 일어나 걷는 역사”가 일어난 것을 말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바울의 회심, 천사가 베드로를 감옥에서 구출한 사건, 바울을 통하여 각 선교지에서 일어난 기사와 표적 특별히 예배소에서 일어난 놀라운 표적들은 모두 영적인 교회들 가운데 나타나는 증거들이다.

모이는 일도 거룩한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표징들 가운데 하나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임으로 모이는 것은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교회사를 살펴보면 교회 안에 부흥의 역사가 시작되면 무엇보다도 먼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변화는 모이는 일이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
찬양도 거룩한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표정이다. 찬양의 질과 양도 교회의 영성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된다. 교회가 영적으로 미숙할수록 찬양은 사람의 관심을 반영하지만 영적으로 성숙할수록 하나님께 지향된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예배가 무엇인지 알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종류의 찬양을 부르느냐는 것은 각 교회의 신앙의 전통과도 무관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찬양의 질과 양은 교회의 영적 성숙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된다는 말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칭송도 영적인 교회에 나타나는 표징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듯이 교회도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로서 맛을 지니고 있다면 교회는 사회로부터 칭송을 들을 수밖에 없다. 영적인 교회는 사회로부터 박해는 받을지라도 윤리적으로는 언제나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교회들이 사회로부터 어떤 박해도 받지 않지만 윤리적인 비난을 듣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거룩한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표징들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원받는 사람이다. 초대교회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했다. 47절은 이런 사실에 대하여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스도인이나 또는 교회의 변화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은혜가 임함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오순절을 통해 임한 능력이 없었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었을까? 예루살렘 교회의 설립, 그 교회와 성도들의 변화된 삶 그리고 그들로 인하여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하는 역사 등은 모두 오순절에 임한 능력으로 인한 것들이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오순절에 능력이 임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와 같은 사실은 모든 시대 교회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그것은 교회가 무엇보다 구해야할 것은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5)”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메시지에 비춰 볼 때 오늘의 교회 문제는 능력을 받기 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영적인 일들을 이루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변화된 삶을 살려고 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은 우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오히려 이와 같은 일에 힘쓸수록 우리는 탈진하여 더욱 영적으로 메마름에 이를 것이다. 주님은 이미 바울을 통하여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경고의 말씀을 주셨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5-7)" 그러면 우리가 위로부터 능력을 받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일이다. 주께서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한 것이야 말로 그들이 위로부터 능력을 덧입는 길이었다.

3. 함께 기도하자. 성령님 우리 가운데 능력으로 임하여 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변화된 삶을 살게 해 주시고 또한 믿음의 공동체를 거룩한 공동체로 세우게 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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